보는 것과 분별하는 것: 전오식과 제6식의 이야기
우리는 매일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눈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귀로 음악을 들으며, 피부로 따뜻한 햇살을 느끼죠.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요? 불교에서는 이를 전오식(前五識)과 제6식(第六識)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고 해석하는 방식의 핵심입니다.
전오식: 단순히 보는 것
전오식은 가장 표면적인 식(識)입니다. 흔히 말하는 오감(五感)에 해당하죠. 눈(안식), 귀(이식), 코(비식), 혀(설식), 몸(신식)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직접적으로 느낍니다. 전오식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입니다. 꽃을 보면 단순히 그 색깔과 모양을 인식하고, 바람이 불면 피부에 닿는 감각을 느낍니다.
하지만 전오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판단도, 해석도 하지 않습니다. 꽃을 보고 "아름답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꽃이다"라고 생각하는 건 전오식의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 단계, 제6식의 영역입니다.
제6식: 분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제6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분별식입니다. 전오식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며, 때로는 추리하거나 상상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산 너머 연기를 보고 "저곳에 불이 났구나"라고 추리하거나, 꽃을 보고 "정말 예쁘다" 혹은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꽃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제6식의 작용입니다.
제6식은 우리의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억을 떠올리고, 미래를 상상하며,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해주죠. 하지만 동시에 제6식은 우리 마음속 갈등과 괴로움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제6식은 끊임없이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같은 이분법적 판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맞아, 저건 틀려."
"저 사람은 나에게 잘못했어."
"이건 내가 좋아하는 거야."
이러한 분별과 판단은 때로는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우리를 괴롭게 만듭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분별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보되 봄이 없이 본다
임제 선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되 봄이 없이 보아라."
이는 단순히 감각적으로 대상을 보는 것을 넘어, 판단이나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꽃을 보면 단순히 꽃일 뿐이고, 산 너머 연기를 보면 단지 연기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6식을 통해 끊임없이 분별하고 판단할 때, 마음은 시비와 갈등 속에 갇히게 됩니다. 하지만 전오식처럼 단순히 보고 느끼는 데 머물러 있다면, 마음은 훨씬 더 고요하고 평화로워질 수 있습니다.
전오식과 제6식을 넘어
전오식과 제6식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불교적 지식을 배우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에 큰 통찰을 줍니다. 우리는 매 순간 전오식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 제6식을 통해 그것을 해석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해석이 지나치면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니 가끔은 이렇게 연습해 보는 건 어떨까요?
- 꽃을 볼 때 "아름답다"고 판단하기 전에 그냥 그 색깔과 모양만 바라보기.
- 음악을 들으며 "좋다/나쁘다"고 평가하기보다 단지 소리를 듣기.
- 누군가의 말에 화가 나기 전에 그저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전오식과 제6식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경험하고 해석하는지를 깨닫는 첫걸음입니다. 이 두 식의 작용을 알아차리고 관찰할 때, 우리는 더 평화롭고 깨어 있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보되 봄이 없이 본다"—이 가르침처럼, 오늘 하루는 조금 덜 판단하고 조금 더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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